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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 - 프롤로그

두더지굴 잠복작전

‘두더지굴’은 언제나 한산하다. 어두운 조명이 인상적인 술집은 들어가는 입구조차 쉽게 찾을 수 없다. 창문은 물론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아 담배 연기조차 쉬이 빠져나가지 못한다. 두더지굴엔 간판이 없다. 굴을 아는 사람들만이 은어처럼 그 이름을 말하곤 한다. 그리고 피를 마신다. 가끔 피를 마시지 않는 이들도 찾아오긴 하지만 그들도 한 번쯤은 피를 마신다.

천장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럽던 공간이 녹슨 쇠며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로 잘게 찢어졌다. 몇 번이고 판자를 덧대어 못질을 한 계단을, 요나스는 구를 듯 급하게 밟고 내려왔다.

몸을 거의 전부 덮은 낡은 후드를 거칠게 집어던지듯 벗었다. 가쁘게 몰아쉬는 숨은 몸을 격하게 움직였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또 죽었어.”

사냥개들의 짓이라고 그는 말했다.

쫓겨 다니는 게 싫어 굴을 만들었지만 그래 봤자 굴일 뿐이었다. 이른 새벽에는 길을 걷던 동료가 물려 죽었다. 단지 피를 마신다는 이유로. 오늘 일어났고 어제도 일어났던 일이며 내일도 일어날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굴을 나가자.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실어 그가 말했다. 훌륭한 연설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감정에 이끌린 포효에 더 가까웠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어두운 조명 아래 섬뜩하게 빛났다.

“바이아를 위해서라도,”

숨을 삼키며, 그가 말을 이었다.

“바이아를 위해서라면.”

두더지굴의 불빛은 희미하지만 눈앞의 얼굴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어둡지는 않다. 그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눈빛을 하고 있는지 요나스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요나스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감정으로 말을 꺼내는지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되지?”

어둠 속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나스는 그가 내려왔던 천장의 문이 제대로 닫혀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사람을 모아. 최대한 많이. 꼭 뱀파이어가 아니라도 괜찮아. 우릴 도와주기만 한다면 하프든 악마든 누구라도 좋아.”

“사냥개가 섞여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그럼 죽여. 우리가 당한 대로. 똑같이.”

요나스의 걸음을 따라 나무판자가 삐걱거리는 신음을 흘렸다. 좁은 지하에 자리 잡은 두더지굴엔 그 공간조차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적은 사람밖에 모이지 않았다. 그 사이로 요나스가 걸어들어갔고, 그리고 명령했다. “케이론, 규영과 함께 블레나에서. 이오는 로스워를, 실라는 아이낙스를.” 그에게 이름을 불린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섯 명이 더 일어났고 요나스는 계속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기의 모두가 그의 전우였다.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고. 요나스는 가장 구석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크게 눈에 띄는 차림은 아니었다. 이곳에 모인 누구나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초라한 몰골이었다. 제 몸을 다 가리지 못하는 낡은 후드는 누더기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렸고 겨우 드러난 손끝은 지저분한 천으로 몇 겹 둘러 감추고 있었다. 푹 숙인 고개에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멋대로 잘렸는지 길이가 맞지 않는 잿빛 머리카락 끝으로 턱이 조금 드러난 게 전부였다.

“누구시더라.” 능청스러운 한 마디에 다른 이들도 그 존재를 그제야 알아차렸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동료들을 부를 때와 확연히 다른 목소리였다. 비꼬는 것도 같았고, 또 무서워하는 것도 같았다.

“못 보던 얼굴인데. 여긴 어떻게 왔지?” 강하게, 그리고 조급하게 요나스가 말했다. 마치 쉬지 않고 소리를 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입술만큼이나 거칠고 마른, 남자 목소리가 후드 아래로 흘러나왔다. 움직이는 입술은 목소리만큼이나 거칠었다.

“소개를 받고 왔지요.”

“누구에게?”

“동업자였던 루이스에게.”

이름을 듣자 누군가 아, 하고 탄식했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남자는 ‘동업자인 루이스’라고 소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남자의 말에 요나스는 세게 주먹을 쥐었다. 손등 위로 굵은 핏줄이 도드라졌다. 팔뚝이 작게, 아주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침착해야 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루이스는 혼자 행동했어.”

“같이 움직였으면 저도 죽었어요.”

지독하게 건조했다. 갈라진 입술 안에 거친 모래알을 가득 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차가웠다. 남자 본인이 아닌 타인의 입을 빌려 말한다고 착각할 정도로 남자의 말은 차가웠으며 단단했다.

요나스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크게 열었다가,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긴장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맞아. 젠장.” 마디마다 잔상처가 가득한 손등이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무거운 한숨이 선을 그리며 빠져나왔다.

“길을 걷고 있었을 뿐이야. 사냥개가 그 뒤를 밟았고. 그래서 죽었어. 거리에서. 그렇게 죽었대.”

우리가 만약 우리가 아니었다면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던 길을, 우리였기 때문에 지나갈 수 없었던 거야.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바스러졌다. 슬픔 때문에, 분노 때문에. 지금 당장 만들어진 얄팍한 원한이 아니었다. 수년, 혹은 수세기를 걸쳐 겹겹이 쌓인 오랜 앙금이었다. 결코 견고하지는 않은, 아무렇게나 쌓이기만 한 앙금은 줄곧 기회를 노리다가 지금의 사건을 신호로 뛰쳐나왔을 뿐이었다.

쉬이 사그라들 리 없는 분노다. 엉망으로 문드러진 채 옆구리를 조금만 건드리면 금방 무너져 숨구멍 하나 내어주지 않고 모두 덮어버릴 것이다. 그 물결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그들의 울음에, 이제 체념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앉아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후드가 미끄러지며 남자의 손이 드러났다. 닳은 끝자락으로 거뭇하게 핏물이 밴 천 조각이 피부보다 더 많이 보이는 손이다. 남자는 그 손을 조심스레 들어, 얼굴을 가린 요나스의 손 위로 겹쳐 올렸다. 차갑지만 따뜻한 손끝이 마른 피부에 닿았다.

“그래서 여기에 왔어요.”

손과 손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붉게 충혈된 요나스의 시선 아래로 남자의 코끝이 닿았다. 떨리는 숨결이 서로의 사이를 파고들어 잃어버린 체온을 찾아갔다. “당신, 그러니까…….” 요나스의 물기 어린 질문에, 남자는 이번엔 그 누구도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후드를 끌어내리자, 머리카락에 덮여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엉성하게 감겨 상처를 다 가리지 못한 붕대가 얼굴에 아무렇게나 달라붙어 있었다. 요나스가 마주할 수 있는 건 왼쪽의 검은 눈동자뿐이었다.

“아제마 콘라드예요, 요나스 크로잔.”

“콘라드?”

대답 대신 남자, 아제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에 미미하게 감도는 분위기를 요나스는 정의하지 못했다. 손을 잡는 건 이제 아제마가 아닌 요나스의 역할이 되었다. 아아, 하는 감탄이 요나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말도 안 돼, 콘라드라고?”

“못 믿겠나요?”

“당연하지, 정말 그 콘라드라니!”

그는 아제마의 손을 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왼쪽으로 한 바퀴 돌고는, 다시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았다. 머리를 감싸 쥔 손이 입을 가리고 목덜미를 쥐었다. “믿기지 않아. 바이아에게 전해야 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아제마에게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었어도 먼지가 뿌옇게 일어날 만큼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는 다시 아제마에게 양팔을 뻗었다. 요나스의 손이 아제마의 팔뚝을 세게 움켜쥐었다. 짤막한 신음이 갈라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것 같기도 했지만 요나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눈치채지 못한 것뿐이다.

“왜 이제야 온 거야!”

환희, 반가움, 어떻게 할 수 없어 터져 나오는 기쁨이 담긴 요나스의 목소리는 천장의 문 틈새로 흘러넘쳤을지도 몰랐다.

굴에 모인 모두가 그 이름에 주목했다. 그들은 아제마를 아제마로 부르기보다는 콘라드로 부르기를 선호했다. 눈을 마주치는 누구든 콘라드의 이름을 외치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인간의 피를 주었다. 찬란했던 과거엔 쉽게 마실 수 있었던 그들의 주식이었지만 이젠 누군가가 희생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귀한 물건이 되었다. 한 잔의 피를 얻기 위해 누군가는 몇 배의 피를 흘렸을 것이다.

줄곧 어둡게 굳어있던 요나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금방이라도 거리로 달려나가 닥치는 대로 사냥개를 벨 것만 같았던 그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밝은 웃음을 지었다.

“콘라드의 권속이 우릴 찾아와주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물어봐도 돼? 루이스는 왜 말을 안 해줬지? 어쨌든 다행이야. 이렇게 만나다니 꿈만 같아.”

잔이 비워지면 피 대신 술을 채웠다. 두더지굴엔 모든 것이 항상 부족했다. 피는 한 잔씩, 대신에 술은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두더지굴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 특별한 손님인 아제마에게는 예외를 두기로 했다. 그의 잔에는 술이 차오르기도, 다시 피가 차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즐겁게 잔을 비운 적이 또 언제였나 싶다. 핏물이 배인 술은 다른 술보다 더 짜릿하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요나스는 아제마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요나스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의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앞으로의 이야기보다 지나간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콘라드의 이름은 술과 함께 그들의 입을 떠나지 않았다. 그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일지라도 어느샌가 묘한 친근감을 느낄 정도였다.

아아, 콘라드. 몇은 이야기를 하다 말고 그렇게 외쳤다. 낡고 더러운 천으로 동여맨 아제마의 손을 꼭 잡고 당신을 믿고 있었노라고 말했다. 지독히도 오랜 시간을 절망 속에서 구르다 달콤한 한 줄기 빛을 맞이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말했다. 요나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울음을 보이거나 아제마에게 직접 기대지는 않았지만 목소리에 묻어나는 감정은 좀처럼 닦아낼 수 없었다. 마음이 북받쳐 오르려는 걸 애써 술로 누르느라 귀 끝까지 새빨개진 지 오래였다.

이러다간 달콤하게 마신 피의 맛을 깡그리 잊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요나스는 점점 청승맞게 회고록을 읊는 장이 되어가는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잔을 든 손을 뻗었다. 가득 넘친 술이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우린 많은 것을 잃었지만 지금, 새로운 동료를 얻었다. 아주 든든한 동료를. 우리의 친구이자 또 구원자가 되어줄 아제마, 콘라드를 위해 건배를 외치고 싶다.”

굴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마음껏 함성을 지를 수는 없었기에 격양된 감정을 한꺼번에 터뜨릴 순 없었지만 조금씩 흘러나오는 환희가 한데 모여 큰 웅덩이를 만들었다. 모두 잔을 든 손을 올렸고, “콘라드를 위해.” 아제마의 이름을 나직이 외쳤다. “그리고,” 요나스가 그 위로 한 마디 더 올렸다.

“바이아 블랑카를 위해.”

엄숙하게 잔을 부딪쳤다. 열 마디 말보다 결의에 찬 눈빛으로 대화를 대신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다시금 확인했다. 요나스와 직접 잔을 부딪친 아제마 역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으로 시선을 나누고는, 입으로 가져가려던 잔을 입에 대지 않고 그대로 테이블 위에 내려두었다.

동시에 머리가죽을 뜯어냈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빠르게 벌어진 일이었다. 마주하고 있던 요나스조차 얼떨떨하게 바라보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눈썹 바로 위부터 찢어진 가죽은 잿빛의 머리카락과 함께 테이블 바로 아래를 굴렀다.

이어 어깨에 둘렀던 낡은 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얼굴의 흉터는 부스스하게 흩어진 검은 머리카락이 대신 가렸다. 둥글게 굽었던 목이며 어깨가 꼿꼿하게 일어나며 요나스와 거의 같은 키가 되었다.

“사냥개다.” 누군가가 말했다.

어두운 빛 아래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견장의 노란 별 네 개가 남자의 움직임을 따라 바쁘게 번쩍거렸다. 아제마, 남자의 하나뿐인 눈을 바라보는 요나스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키듯 가늘게 떨렸다.

콘라드. 요나스는 그 부름을 뱉으려다 말고 다시 삼켰다. 일렁이는 불꽃이 비친 눈동자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보다도 더 날카롭게 변했다.

“속였나.”

낡은 넝마를 허물 벗듯이 벗어내고 말끔한 제복 차림이 된 남자는 갈라진 입술로 아제마의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동시에 등 뒤로 감춰두었던 단검을 뽑아 들었다. 두더지굴의 어두운 빛 아래서도 잘 벼려진 날이 선명하게 보였다.

“당한 대로 똑같이 해드린 거죠.”

“우릴 속였어!”

요나스의 잔이 나무 바닥을 나뒹굴기보다 먼저 날과 날이 부딪혔다. 요나스 역시 후드 안에서 단도를 꺼내 휘둘렀다.

그러나 요나스의 검은 포물선 한 번 제대로 그어보지 못하고 나가떨어져 버렸다. 엉성한 재료로 어설프게 만든 이 나간 단도가 제대로 된 칼 앞에서 활약할 리 만무했다. 그나마 작은 불똥을 조금 튀긴 것이 ‘대치했다’는 말을 겨우 뒷받침해주었다.

철이 울린 소리만큼 손목도 저릿하게 울렸다. 요나스의 칼을 가볍게 받아치고, 남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 그대로 다시 입을 열었다. 얄미울 정도로 차분했다. 적어도 요나스와, 요나스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NI 여왕군 총사령관, 은비루라고 합니다.”

“콘라드는!”

“미안해요, 이젠 없어요.”

천장의 문이 부서졌다. 단단한 군화에 너무도 쉽게 짓이겨진 나무판자 파편이 계단으로 쏟아졌고, 뒤를 이어 같은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조금 긴 단검을 뽑아 든 채로 일사불란하게 내려왔다. 남자를 중심으로, 이번엔 군인들이 둥글게 섰다.

두더지굴의 공기가, 판도가 바뀌었다. 남자의 미소는 더 이상 상냥하지 않았다. 차갑게 서려 좁은 굴 안을 얇게 저밀 뿐이었다. 피부 사이사이를 파고들고, 혈관을 찢어, 뼈마디를 부수는 사냥개의 미소다.

요나스가 무너져내렸다. 무릎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온 굴을 울렸다. 아아, 하고 그의 목이 울었다. 날붙이의 쨍한 소리가 간간이 들렸지만 비명을 지르는 건 굴에 모여있던 이들이었다.

잔에 담기지 못할 피비린내가 흐르기 시작했다. 요나스의 입술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너는,”

목소리 역시 가늘게 떨리는 듯했다.

“콘라드라고 했잖아.”

문밖에서 군의 말이 울었다. 계단을 올라가는 각자의 발소리가, 둔탁하게 두더지굴을 울렸다.

요나스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액체가 되어 녹아내리듯 머리부터 시작해 어깨와 허리까지, 바닥을 향해 떨어지더니 처음 만났을 때의 남자보다도 더 작아졌다. 그렇게 웅크리고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랗게 중얼거렸다. “루이스의 희생은 너를 맞이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했는데.” 남자의 칼끝은, 그런 요나스의 머리 위를 떠나지 않았다.

한순간이었다. 한없이 작아져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던 요나스는 다시 후드 속으로 손을 숨기더니, 가지고 있던 또 다른 칼을 꺼내 자신을 겨눈 칼을 세게 내치고 남자에게로 튀어 올랐다. 굵은 울림이 날카롭게 귓가를 맴돌았다. 뭐라고 외친 것도 같았다. 누군가를 위해서였는지, 무엇을 외쳤는지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는 외쳤다. 외치려고 했었다.

남자를 향해 뻗어진 칼보다, 남자의 두 번째 칼이 외침을 가르고 요나스의 가슴을 찔렀다. 협소한 공간에서나 휘두를만한 짧은 단검이었지만 요나스의 가슴을 파고들어 등가죽을 찢기엔 충분히 길었다.

요나스의 칼이 떨어졌다. 누군가는 오열했고 누군가는 소리쳤다. 군인의 칼에 몇 명인가 더 쓰러졌고, 억지로 끌려나가는 발소리가 뒤를 이었다. 말을 더 내뱉지 못하고 숨을 거둔 요나스를 남자는 익숙하게 바닥으로 던지듯 칼에서 빼냈다.

동시에 남자의, 총대장의 다리가 꺾였다. 입에서 쏟아지는 시커먼 피가 쓰러진 요나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심하게 구역질을 하며 피를, 술을 게워내던 그는 작전을 수행하기 전 조금 먹었던 육포까지 전부 토하고 위액을 뱉었다. 질끈 감은 눈가로 굵은 눈물이 맺혔다. 채 눈을 감지 못한 요나스의 머리가 토사물과 제 몸에서 흐른 피로 뒤덮였다.

차갑게 식은 그 입술을 적시는 것은 시큼하게 썩어들어가는 인간의 피인가, 이제 굳을 일만 남은 뱀파이어의 피인가. 바닥을 짚은 칼이, 그리고 그 칼을 잡은 칼이 힘겹게 떨렸다. 입안에 남은 이물을 끈적한 침과 함께 요나스의 머리 위로 뱉었다. 아무도 남지 않은 두더지굴 안으로 삐걱거리는 나뭇결 소리가 울렸다. 소리는 느긋하게 울리기 시작하다, 이내 다급하게 서두르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두 사람과 하나의 시체가 밟았을 뿐인데도 나무 바닥은 신경질적으로 뒤틀렸다.

부하의 발소리다. “어디 다친 곳이라도 있으세요?” 놀란 목소리로 급하게 묻는다. 남자의 턱 끝으로 식은땀이 얇게 배어 떨어졌다.

“…대접받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요.”

걱정을 끼쳤다. 서둘러 나가야겠다. 남자는 분장을 위해 감았던 낡은 천을 풀어 입가를 닦았다. 시체 위로 떨어진 천 조각이 핏물로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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