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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 - Ⅰ

늑대 소년 (1)

“‘…비밀리에 모임을 가져왔던 뱀파이어 일당은 불법 무기 거래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블레나에서 이루어진 첫 검거에는 엄선된 수도군 치안부대가 활약했으며, 특히 NI군 총사령관이신 은비루 대장님께서 직접 일당의 우두머리를 처단했다는 훌륭한 공적을 세우셨다.’ 이상이 방금 뿌려진 기삽니다.”

푸르게 굽이치는 긴 머리를 하나로 올려묶고, 오스만 육군 중장이 아직 잉크 냄새가 선명한 신문 기사를 낭독했다. 호외로 발행된 얇은 신문은 제 역할을 마치자마자 오스만의 신경질적인 손짓에 힘없이 구겨졌다. 거칠게 터지는 기침 소리가, 마치 그런 신문의 운명을 위로하는 것도 같다.

“짧은 시간에 잘 썼네요.”

“지금 그게 문젭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속을 게워내는 요란한 소리가 오스만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꿋꿋하게 말을 끝마치긴 했지만 상대방에게 닿았는지 닿지 못했는지에 대해선 알 길이 없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 변기 앞에 붙어 내장을 토해낼 듯 구역질을 하는 건 ‘훌륭한 공적’을 세우고 막 복귀한 은비루 총대장이었다. 작전을 끝내고 성으로 돌아온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곤 화장실로 달려갔다. 덕분에 지켜보던 닐 애드먼드 육군 중장, 통칭 닐 중장의 가슴만 바닥까지 철렁 내려앉았다. 적진에 혼자 뛰어든 것도 불안해서 다른 일에 통 집중을 할 수 없었건만,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저러니. 닐은 ‘총사령관 사망, 뱀파이어 일당에게 독살’ 같은 후속 기사가 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했다.

다행히 큰 이유는 아니었다. 두더지굴에서 뱀파이어인 척 연기를 하느라 마셨던 인간의 피가 원인이었다. 따뜻하게 데워지기까지 한 ‘생피’를 한 모금도 아니고, 몇 잔씩 실컷 마셔댔으니 속이 뒤집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가 힘겹게 입을 떼어 말해준 이유를 듣고 닐은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인간인 비루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돌아버릴 상황이었지만 사실, 개인적인 사정이었다. 인간이 아닌 자의 입장에선 인간의 피를 마시는 건 단순한 기호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스만도 제 대장이 헛구역질을 하는 앞에서 태연하게 신문 기사를 읊을 수 있었다. 비루의 등을 쓸어내리는 닐의 손놀림이 아기를 다루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그럼 뭐가 문젠데요.”

물론 이해는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선 서운할 수밖에 없다. 등을 두드려주는 닐은 그렇다 쳐도 이제부터 잔소리만 잔뜩 퍼부을 오스만의 목소리는 듣기만 해도 괜한 짜증이 솟구쳐오를 정도였다. 신경을 쓴다고는 해도 한 번 상한 비위에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다. 미안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피곤했고, 속도 여전히 불편했으며 너무도 많은 일을 한 번에 겪은 뒤였다. 충분히 휴식을 취해도 모자랄 상황에 위로는커녕 쓴소리나 퍼붓는 사람에게 무슨 여유로 웃음을 보이겠는가.

그래도 그는 지지 않는다. 비루의 퉁명스러움에 못지않게 오스만도 신경질적으로 쏘아대기 시작했다.

“적진에 뛰어드는 수장이 세상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본인의 역할을 이해하고 행동하라는 말을 몇 번씩 하는데 그걸 아직도 못 하십니까? 총대장님께선 총대장이라는 자각을 하고 계시기는 하십니까?”

쏟아지는 말을 전부 듣지는 못했다. 오스만이 말을 꺼낸 동시에 닐이 변기 물을 내린 것이다. 화장실의 굉음에 묻혀 잔소리의 반은 위액과 함께 하수구로 흘러내려 갔다.

“잘 못 들었어요. 한 번만 더 말해줄래요?”

저것보다 더 구겨질 수 있을까 싶던 인상이 더욱 심하게 구겨졌다. 오스만은 말을 멈추곤 금방이라도 신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처럼 숨을 크게 삼켰다. 폭력을 행사하리라는 신호는 아니었다. 품위 없이 튀어나가려는 분노를 억누르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었다.

오스만은 한 줌 크기가 된 신문을 애써 반듯하게 접으며 멈췄던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없던 예의가 생겼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게 그의 최선이었다고 생각은 한다. 그는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기도 전에 들고 있던 신문을 던지듯 비루에게 건넸다. 누가 보았다면 도대체 군의 기강이 어떻게 되어 먹은 거냐고 놀랄 정도로 그의 행동은 거칠었다. 비루는 제 쪽으로 건네진 신문을 가볍게 무시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왕님께 보고는 어떻게 드릴 생각이십니까?”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면대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에 비친 몰골이 말이 아니다. 아직도 분장이 남아있는 얼굴엔 굵은 땀방울도 군데군데 맺혀 있었다. 눈 밑은 시커멓게 죽어 있었고 분장보다 아주 조금 덜 너덜너덜한 입술은 거칠게 일어났다. 조만간 눈썹이 하얗게 셀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봤자 한쪽밖에 없었지만.

가장 찬 쪽으로 수도꼭지를 비틀어 물을 틀었다. 힘차게 쏟아지는 물을 양손 가득 받아 집요하게 입안을 헹구고 시원하게 세수도 했다. 이리저리 뻗쳐 부스스했던 머리가 물에 젖어 반듯하게 넘어갔다. 거울 옆의 수납장에서 닐이 수건 한 장을 꺼내 주었다. 비루는 부드러운 수건에 얼굴을 파묻고는 묵직한 신음 같은 한숨을 흘렸다.

그가 신문을 받아든 건 오른쪽 얼굴의 흉터를 검은 안대로 가리고 나서였다. 역시 닐이 건네준 넓고 검은 안대를 거울 앞에서 꼼꼼이 살피며 쓰더니,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끔한 눈을 하곤 오스만을 마주했다.

신문을 손에 들고, 비루는 1면을 눈으로 슬쩍 훑어보았다. 멀리서도 눈에 들어올 정도로 굵게 인쇄된 타이틀은 ‘블레나 내 뱀파이어 요새 격파, 용맹한 총사령관님’ 이라고 쓰여 있었다. 참 촌스러운 문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다 훑지도 않은 신문을 다시 닐에게 건넸다.

“기사 그대로 낭독하면 되겠네요.”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농담이에요. 반쯤은.”

누구든 당신 질문을 받으면 성의 없는 농담으로 대답하고 싶어질 것이란 말은 잘 접어 삼켰다. 곱게 오지 않는 말에 곱게 대답할 마음은 없었지만 자신의 격까지 떨어뜨릴 마음은 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지쳐있었고, 사소한 말다툼에 쏟을 힘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행히, 다툼을 오래 이어가고 싶지 않은 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대장님께서 알아서 잘하시겠지요.” 그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오스만은 빠르게 화장실을 나갔다.

여왕은 오스만처럼 괜한 트집을 잡지 않았다. 그녀는 비루가 건넨 신문에 눈길을 주다 말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오스만이 또 심술을 부린 모양이구나.”

그렇게 말하고 다시 유쾌하게 웃었다. 검은 비단결처럼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들썩이는 몸을 따라 넘실거렸다.

“저 그렇게 미움 받을 짓 했어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여왕은 비루의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했다. 생각을 하고 답을 내리는 역할을 그대로 건네받은 비루는 못마땅한 듯 뾰로통한 표정을 짓다 곧 입을 다물고 머릿속을 되짚었다.

그가 여왕과 마주한 곳은 공식적인 알현실이 아니었다, 지극히 사적인 여왕의 안방이었다. 넓은 정원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커다란 창을 내어두었으면서도 어느 한 곳 조명이 꺼진 곳이 없는 그녀의 안방은 왕족 이외에 그 어떤 고위 귀족이라고 해도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공간에 비루는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를 잡았다. 여왕 역시 그런 그를 내쫓지 않고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여왕의 앞에 무릎을 꿇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여왕이 권한 고급스러운 소파에 앉아 그녀와 똑바로 마주했다. 그리고는 마치 연장자일 뿐인 누군가에게 고민 상담을 하듯 편안하게 투정까지 부리며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 그를 보는 여왕의 검은 눈동자는 건방진 신하의 괘씸함을 묻는 빛이 아닌, 귀여운 부하의 성장에 뿌듯함을 느낀 빛을 안고 있었다.

“…저 그렇게 잘못했어요?”

아마 이 공간에서 불편함을 느낄 사람을 굳이 꼽자면 밖에서 비루를 기다리는 닐 중장이나, 여왕의 시중을 드는 시종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람이란 종족을 떠나서 반복된 학습에 익숙해지는 법이다.

“네가 잘못했다고는 생각 안 해.”

“그건 이라나미 생각이잖아요.”

“너도 지금부터 그렇게 생각할 거잖아.”

여왕이 입술을 움직여 웃었다. 비루는 자신을 향한 여왕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려 무릎에 팔꿈치를 괸 그대로 눈두덩이를 눌렀다. 비누로 씻어내지 못한 분장이 손톱에 남아 깨끗한 피부를 파고들었다.

힘겨운 한숨이 터졌다. 여왕은 그런 그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역할은 그를 맞이하고 이야기를 듣다가 가벼운 고민거리를 안겨줌으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쓸데없는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 그를 지켜볼 뿐이다.

선생님은 이렇게 될 걸 알고 계셨을까요. 손톱을 파묻은 그대로 그가 말했다. 아마 앞으로 벌어질 일도 알고 있었을 거야. 여왕의 대답은 그녀의 몸짓만큼이나 시원했다. 눈두덩이로 파고들었던 손톱이 깊은 자국을 남기고 떨어졌다. 숙인 고개가 올라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여왕은 그 시간을 다독였다. 비루야, 하는 다정한 목소리가 둘 사이로 흘렀다. 고개를 들지 않으면 여왕은 다시 불렀다. “비루야.” 그 애틋하고도 집요한 부름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남은 눈에 여왕이 비쳤다.

“히스한테 눈 보여줬니?”

겨우 올라온 고개가 이번엔 좌우로 두어 번 저어진다.

“꼭 봐달라고 해.”

“알았어요. 잠깐 쉴 때 부를게요.”

“쉬고 나서 불러.”

여왕의 말에, 그가 나지막이 여왕을 불렀다. “이라나미.” 그 부름에 일부러 그가 너무도 가엾고 또 가엾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일부러’라는 게 너무 확연히 드러나 얄밉기까지 하다. 그녀는 틈만 나면 그를 놀리려 했다. 만약 그가 일생일대의 고민을 가지고 여왕을 찾는다 하더라도 장난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휴가 좀 주세요.”

“안 돼.”

깔끔하게 거절당했다. 이젠 입술을 비죽이는 것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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