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그러니 남겨졌다. 이거 진짜 심각한 문제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그 말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여자의 시선이 지면을 향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살짝 흘러내렸고 눈동자에 비치던 빛이 눈꺼풀에 가려졌다. 그 빛이 사라지는 게 싫어 안녕, 하고 말을 걸자 조금 놀란 눈치의 눈동자와 다시 마주쳤다. 갈색 홍채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차,...
0. 보통의 이야기는 비가 내리는 날 시작된다. 이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전화를 마친 보스가 향한 곳은 뉴욕의 더러운 뒷골목 어딘가,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도 나지 않는 정말 외진 구석이었다. 그는 쓰레기로 가득한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비를 겨우 피하고 있었다. 채 다 구겨 넣지 못한 한쪽 다리와 어깨는 전부 젖어 있었고 아무렇게나 걸친 옷에선 역한 냄새가 났...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굴욕적인 퇴장이 있던 다음 날의 오후, 나는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너무 화려하지 않게, 최대한 깔끔하고 지적으로 보이도록 헤어 스타일링부터 향수 선정까지 제법 고민했다. 브라운 톤의 코디와 따뜻하면서 차분한 느낌을 주는 향을 뿌리고 집을 나섰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유는 정말 별거 없었다. 나는 어제의 마...
버릴거라서요. 다른 아이로 가져가셔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여자의 표정은 후련하지도, 시원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아무리 보아도 버릴 요량으로 키운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화분 디자인이 조금 촌스러웠지만 – 그래선가? 하지만 그런 거라면 오히려 제 값보다 비싸게 쳐서 팔아넘기는 게 더 이득이지 않을까? 약이라도 숨겨놓았나, 하고 생각해봤지만 그...
시작은, “찬성 씨, 나 요즘 모니터를 계속 봐서 그런지 눈이 뻑뻑해, 가습기 같은 게 필요하겠어요.” 라는 비타의 말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비타의 그 발언은 잘못이 없을 수도 있었다. 발언이 잘못을 갖게 된 건 망할 드웬 놈의 “가습기는 물때도 생기고, 화분 같은 걸 둘까?”라는 멍청한 대답 때문이었다. 그래, 정정한다. 모든 것은 저 새끼의 한심한 발상...
“너 역시 여왕이 보낸 병사였구나!” “나를 배신했어, 이 나를 배신했어!” “널 저주한다. 사랑을 누리지 못할 아이야, 그 눈이 다시 빛을 보기 전까지 내내!” 죽은 뱀파이어는 재가 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여왕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으로 만든 탄환을 가슴 깊히 간직한 채 고꾸라진 시체는 살아 있을 적 보다도 더 차갑게 식어갈 뿐이다. 닐 애드먼드...
candela : A light of made wax or tallow; tallow candle or taper. 밀초, 초; 양초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을 떴다. 시시한 영화만 줄창 내보내는 채널은 여전히 시시한 영화를 송출하고 있었다. 어쩐지 이상한 꿈을 꾼 것 같더라니만 TV 탓이었다. 바짝 마른 입을 쩝쩝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발에 채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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